[김창수]

이뿐만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이 호르무즈 파병 요청을 거부했다며 불만을 표출했다. 트럼프의 주장에 따르면 정상 차원에서 파병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말에 대한 세상의 신뢰도는 높지 않다. 트럼트도 그것을 개의치 않는 듯하다. 그래서 거침없는 말의 질주를 일삼는다. 신뢰도는 높지 않지만 파괴력은 국제 사회의 그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트럼프는 파병 거절에도 공개적으로 거칠게 파병을 압박해 들어오고 있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호르무즈 파병이라는 문제는 교과서에 따르면 정답은 분명하다. 그러나 정답을 제출할 경우 도리어 예측 불허의 처벌이 뒤따르는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그래서 그런지 정부가 파병을 검토 중이며 국회 동의안 제출을 저울질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청와대는 결정된 바 없다고 말하지만, 국방부는 현지 조사단을 파견했다.

파병에 반대하는 논거는 정파를 넘어 제기되고 있다. 여당 내에서도 반대가 가시화되었다. 헌법 제5조가 침략적 전쟁을 부인하고 있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도 없다는 점, 이라크전보다 명분이 약하다는 점, 국회 통과가 쉽지 않고 헌법적 논란이 예상된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대의명분 없는 전쟁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는 주장과 함께, 항행의 자유와 우리 상선 보호가 목적이라면 영국·프랑스 등과의 협조 방식을 검토해야 한다는 대안도 제시되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물론 일본도 미국의 요구에 사실상 응하지 않았다는 점과 나아가 2003년 이라크 파병 당시는 비전투 지역에 비전투 병력을 파병했다는 점까지 소환되었다.

타미플루 지원의 불발과 비전통 안보

이러한 상황에서 9·19 공동선언 8주년을 맞이했다. 9·19는 전쟁 위험의 제거와 긴장 고조의 반대를 핵심으로 삼은 합의였다.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자고 약속한 나라가, 다른 지역의 전쟁에는 어떤 원칙으로 임할 것인가. 우리는 지금 이러한 물음 앞에 서 있는 것이다. 일관된 답을 갖지 못하면 우리의 평화론은 국제 사회에서 신뢰를 얻지 못한다.

우크라이나에서, 가자에서, 이란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국제 사회의 연대와 회복 노력에 한국이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 군사적 기여가 아니라 인도적·외교적 기여로 우리의 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우리가 선진국으로 자임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요청에 응답하는 속도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응답의 방식을 스스로 설계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9·19 공동선언 8주년이 각별한 이유다.

9·19 평양공동선언의 핵심은 '전쟁 위험의 제거와 적대 관계의 해소'이다. 한반도 전 지역에서 전쟁 위험을 없애고 근본적인 적대 관계를 해소해 나가기로 한 것이다. 당시에는 다소 의례적으로 읽혔던 이 문장이, 지금은 다르게 읽힌다. 우크라이나에서, 가자에서 그리고 이란에서 전쟁이 사람들의 삶을 갈아없애는 광경을 목도하였다.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이 상황은 전쟁을 멈추는 일보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일이 훨씬 싸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훨씬 어렵다.

9·19 공동선언에서 현시점에서 주목해서 볼 또 다른 점은 비전통 안보 협력이다. 자연생태계 보호·복원을 위한 환경협력, 전염성 질병의 유입과 확산 방지를 위한 방역 및 보건·의료 협력에 합의한 것이다. 2018년의 이 조항은 2년 뒤 팬데믹을 예견한 것처럼 보였고, 기후 위기가 안보 의제가 된 지금은 더 선구적으로 보인다.

북한에 대한 타미플루 지원도 이 합의에 기초한 것이다. 타미플루 지원은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다른 점이 있다. 워킹그룹의 방해로 중단된 것이 아니라 워킹그룹에서 운송 트럭을 제재 대상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판정이 늦어져서 혼선이 발생했던 것이다.

인도적 목적의 운송 트럭은 제재 대상이 아니라는 결론이 났지만, 그 시점에서 타미플루 부작용 사례가 발생했다. 남북이 합의한 타미플루는 유통기한을 1년 남긴 것이었다. 이 때문에 북한은 부작용 사례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부작용 여부를 판단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문제의 하노이 결렬로 이어졌다.

결국 타미플루 지원 문제는 워킹그룹의 검토 지연이라는 걸림돌에 타미플루 부작용과 하노이 결렬까지 겹쳐버려서 실종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 사례가 앞으로 기후 위기, 보건의료, 재해 재난 등 비전통적 안보 협력의 걸림돌은 아니다. 지금 악화한 남북 관계를 풀어 나갈 수 있는 하나의 길은 국제 사회와 함께 비전통적 안보 의제를 풀어 나가는 과정에서 남북이 만나는 것이다.

남과 북은 지상·해상·공중 모든 공간에서 상대방을 겨냥한 적대행위를 중지하기로 했다. 군사분계선 일대 포병 사격훈련과 연대급 이상 야외기동훈련을 중지했고,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기로 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종이에 머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남북은 시범적으로 각각 11개의 GP(감시초소)를 철수하고 1개씩만 원형 보존했으며, 1개 조 9명씩의 검증반을 상호 파견해 현장 검증을 마쳤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비무장화했다. 65년 만에 한강하구 수역을 남북이 공동으로 조사해 해도를 제작했다.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에서는 전사자 유해 발굴을 위해 남북 도로를 연결했다.

접경지역의 군사적 긴장은 실제로 낮아졌다. 정전협정 이후 체결된 남북 군사합의 가운데 가장 정교하고, 가장 검증 가능하며, 가장 잘 이행된 신뢰 구축 장치였다. 이 평가는 지금도 유효하다.

국제적 장벽이 높았던 것은 사실이다. 제재 국면에서 남북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었다. 9·19 공동선언에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여건이 마련되면'이라고 조건을 붙였던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었다.

그러나 군사적 신뢰 구축은 제재의 대상이 아니었다. 군사공동위원회 가동, 서해 평화수역 후속 협의, 한강하구 공동 이용은 제재와 무관하게 추진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남과 북이 손을 잡고 함께 넘었어야 할 지점이 분명 있었다. 우리가 평가해야 할 지점이 여기에 있다.

신국제 질서와 신전략

9·19 공동선언은 대한민국의 장기 국가발전전략으로 승화되어야 했다. 평화가 왜 우리의 성장 전략이며 안보 전략인지, 왜 저성장·인구감소 시대에 한반도의 긴장 완화가 경제적 합리성인지를 담은 장기 국가 발전 전략 차원에서 9·19를 위치시키지 못했다. 대화는 굴종으로, 평화는 안보 불감증으로 공격받는 프레임에 우리의 전략과 언어가 충분히 두터워야 한다는 것을 교훈으로 안겨주고 있다.

지금 한반도는 2018년과 구조적으로 다르다. 북한의 핵능력은 고도화되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2026년 연감에서 북한이 2026년 1월 기준 약 60기의 핵탄두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했다. 1년 전보다 10기 증가한 수치이며, 추가로 30기 이상을 만들 핵물질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했다. 이 수치는 신고된 것이 아니라 핵물질 계산에 기초한 추정이므로 폭이 있다. 그러나 방향은 분명하다.

북한은 남북 관계를 재정의했다. 2023년 말 '적대적 두 국가' 선언 이후 북한은 이를 단계적으로 제도화했다. 2026년 3월 최고인민회의에서 개정된 헌법은 통일 조항을 삭제하고 영토 조항을 신설했다. 올해 초 열린 조선노동당 제9차 대회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한국을 '가장 적대적인 실체'로 규정하고 동족의 범주에서 영원히 배제하겠다고 선언했다. 수사에 머문 것이 아니다. 규범과 조직과 무기체계로 옮겨지고 실행되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이후 2025년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과 고정식 확성기 철거를 단행했다. 2025년 8월 9·19 군사합의의 단계적 복원 방침을 밝혔다. 2026년 2월 통일부는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포함한 복원을 선제적으로 검토·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제5차 남북관계발전기본계획(2026~2030)은 '북한 체제 존중, 흡수통일 불추구, 적대행위 불추진'을 원칙으로 명시했다.

그러나 북한의 호응은 없다. 확성기 철거에 대해 김여정 부부장은 관심 없다는 취지로 일축했다. 우리의 선제적 조치는 우발적 충돌을 막는 방파제 역할은 했다. 그러나 북한을 대화로 끌어내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 이것은 정책의 실패라기보다 현 정세와 시기가 만든 구조에서 파생하는 측면이 분명 있다.

현 정세는 과거 남북이 화해 협력을 외치던 시기와 확연히 다르다. 20세기 전반부는 전쟁의 시대였다. 1950년부터 1990년까지는 냉전이었다. 1990년부터 2020년 무렵까지는 탈냉전이었다. 남북의 주요 합의들이 모두 이 탈냉전기에 태어났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2000년 6·15 공동선언, 2007년 10·4 선언, 2018년 판문점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 강대국 경쟁이 느슨해진 국제적 공간, 그 공간이 한반도의 자율성을 열어주었다.

지금은 그 공간이 닫혔다. 탈냉전 이후의 시대를 무엇이라 부를지는 아직 합의가 없다. '신냉전'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현재의 질서는 진영이 명확히 갈린 냉전보다 훨씬 유동적이고, 훨씬 거래적이며, 훨씬 예측하기 어렵다. 동맹은 계산되고, 규범은 선택되며, 각국은 각자도생한다. 탈냉전이 끝난 자리에 온 것은 새로운 질서가 아니라 질서의 공백이다.

탈냉전기에 설계된 남북 합의의 문법을 가지고 탈냉전 이후를 감당할 수는 없다. 6·15와 10·4와 9·19는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라는 전제 위에 서 있었다. 북한은 그 전제를 폐기했다. 국제적으로는 미국의 관여 의지가 거래적으로 변했고, 중국과 러시아는 대북 제재 체제에서 이탈했다.

새로운 구상이 필요하다. 그것은 9·19를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9·19가 담았던 원리를 다른 문법으로 다시 쓰는 일이다. 그리고 이 구상은 우리만의 계산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국제 정세와 우리의 능동적 대응이 맞물려야 한다. 미국에 한반도는 중국 견제라는 큰 판에서 한 부분을 차지한다. 북핵은 해결해야 할 문제라기보다 관리해야 할 조건에 가깝게 다뤄지고 있다. 동맹의 가치는 기여의 총량으로 계산된다.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다.

아울러 북미 대화를 촉진해야 한다. 북한은 지금 남한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 현실을 부정하는 것은 전략이 아니라 희망이다. 그러나 북한이 북미 정상회담의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다는 점은 중요한 변수다. 북미의 트랙과 남북의 트랙이 달리 움직일 수밖에 없다.

이를 고려한다면 '한국 배제'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반드시 자리에 앉아야 한다는 당위보다는 두 갈래로 출발할 수밖에 없는 북미, 남북 관계에 대한 전략을 가다듬어야 한다.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성이 회담장의 좌석으로 확보되는 시대가 아니다.

남북의 트랙은 국제 플랫폼에서 비전통 안보를 매개로 접촉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여기에 바로 9·19에서 저평가된 유산이 자리 잡고 있다. 환경 협력과 방역·보건의료 협력 조항이다.

군사와 정치가 닫혀 있어도 기후와 감염병과 재난은 국경을 묻지 않는다. 감염병은 휴전선을 통과하고, 대기오염은 여권을 요구하지 않으며, 임진강의 홍수는 남북을 함께 적신다. 이 영역에서는 '적대적 두 국가'라는 북한의 규정을 역으로 접촉의 통로로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