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증 버려 드릴까요?”

카페나 식당, 마트에서 계산을 마치면 흔히 듣는 말이다. 받아도 금세 버리고, 안 받아도 그만이던 종이 영수증. 환경오염과 자원 낭비의 주범으로 지목받으며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아온 이 얇은 종이를 일부러 챙기는 이들이 늘고 있다. 영수증을 노트에 붙여 하루의 궤적을 기록하고, 여행의 기억을 되새기는 기념물로 간직하는 식이다. 기업과 공익 단체도 영수증의 새로운 쓸모에 눈을 돌리고 있다. 계산 내역만 찍히던 종이에 광고와 이야기, 사회적 메시지를 담는다. 전자 영수증 시대, 별 쓸모 없어 보였던 종이 영수증이 새삼 주목받는 이유는 뭘까.

◇버리던 종이, 기록이 되다

‘출근길 커피 3500원, 점심 샌드위치 8800원, 책 1만6000원, 퇴근길 마트 5만2300원….’ 회사원 박수영(38)씨의 수첩에는 영수증이 빼곡히 붙어 있다. 영수증 옆에는 물건을 산 이유나 당시 기분을 짤막하게 적어뒀다. 처음엔 지출을 줄이려고 시작했지만, 어느새 일기에 가까워졌다. 박씨는 “언제 어디에 갔고, 뭘 먹고 샀는지가 영수증에 다 찍혀 있다”며 “영수증만큼 내 하루를 잘 보여주는 것도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씨처럼 영수증을 일상의 기록으로 삼는 ‘영수증 저널링’은 블로그·인스타그램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소비 내역에 그치지 않고, 영수증에 얽힌 장면과 감정을 함께 남기는 방식이 많다. 미술교사인 A씨는 영수증에 그림을 그려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김밥과 돈가스·커피 등 영수증에 찍힌 메뉴를 실사처럼 그려 넣고 “지나간 순간은 사라지지만, 영수증은 남아요” 같은 글을 덧붙인다. A씨는 “쉽게 버려지는 영수증 위에 그날의 음식이나 순간을 남겨두면 나중에 기억이 더 선명하게 떠오를 것 같아서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그의 계정은 팔로어가 2만6000명이 넘는다. 영수증 기록으로 책을 낸 이도 있다. 카피라이터 출신 작가 정신은 23세부터 48세까지 영수증 2만5000장을 모았고, 그중 일부에 얽힌 이야기를 엮어 지난해 ‘40세 정신과 영수증’을 펴냈다.

왜 하필 종이 영수증일까. 전자 영수증은 따로 찾아보지 않으면 쉽게 묻히지만, 종이 영수증은 물건을 사는 순간 손에 쥐어진다. 종이의 물성 자체가 지나간 순간을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이는 손으로 쓰고 만지고 간직하는 아날로그 경험을 다시 찾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기록학 연구자 김하나는 올해 ‘기록학연구’에 발표한 논문에서 “영수증에는 한 개인의 일상을 설명할 수 있는 방대한 정보가 응축돼 있다”고 했다. 그는 영수증이 한 사람의 생활양식과 경제 상황을 보여주고, 당시 유행하던 브랜드나 문화적 코드를 읽어내는 단서가 된다고 분석했다.

◇광고도, 이야기도, 정보도

영수증의 새 쓸모를 발견한 건 소비자뿐만이 아니다. 기업과 단체들도 주목하기 시작했다. 영수증이 광고판이 되고, 읽을거리가 되고, 때로는 꼭 필요한 정보를 전하는 매체가 된 것이다.

지난 7월 커피 프랜차이즈 메가MGC커피는 이른바 ‘괴담 영수증’을 선보였다. ‘붉은 스무디의 흔적을 남기지 마십시오’ ‘등 뒤가 서늘해도 음료에 집중하십시오’ 같은 문구를 영수증에 인쇄한 것이다. 예상 밖의 문구는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소셜미디어에는 영수증을 찍은 사진이 잇따라 올라왔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여름 신메뉴는 출시 2주 만에 100만개 넘게 팔렸다. 문구 브랜드 모트모트는 지난해 문구 박람회에서 모든 영수증의 첫 품목에 ‘커다란 응원(0원)’을 찍어 주목받았다. 중국 차(茶) 브랜드 차지는 영수증 뒷면을 짙은 푸른색 바탕과 화려한 로고로 꾸며 화제가 됐다.

영수증 자체를 ‘읽을거리’로 만드는 곳도 있다. 대전의 독립서점 다다르다는 영수증 하단에 ‘영수증 서점 일기’를 싣고 있다. 책방 주인의 짧은 일기와 책에서 발췌한 문장, 서점 소식 등이 담긴다. 비슷한 시도는 해외에도 있다. 일본의 대형 서점 체인 기노쿠니야서점은 신간 출간에 맞춰 작가의 메시지나 사인, 일러스트 등을 인쇄한 ‘특별 영수증’을 구매 특전으로 제공한다. 중국 음료 프랜차이즈 미쉐빙청은 지난해 20회짜리 연재소설을 영수증마다 한 회씩 무작위로 실어 인기를 끌었다. 한 홍보 대행사 관계자는 “영수증은 소비자가 매장을 떠나기 직전 브랜드와 만나는 마지막 오프라인 접점”이라며 “별도 참여를 유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노출되고, 재미있는 문구나 이미지가 더해지면 온라인 공유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영수증은 공익 정보를 전하는 매체로도 활용된다. 초록우산의 ‘생명을 지키는 영수증’ 캠페인은 언어 장벽과 정보 부족으로 필수 예방접종 등 기초 의료 서비스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이주 배경 아동을 돕기 위해 기획됐다. 초록우산은 지난해 이주 배경 가정이 자주 이용하는 지역 마트에 다국어 안내문과 QR코드가 인쇄된 ‘특수 영수증’을 배포해 필수 예방접종과 건강권 지원 사업 등을 안내했다. 이를 통해 이주 배경 아동 102명이 의료 기관과 연계됐고, 이 가운데 80명이 건강 검진과 예방접종을 받았다. 이 캠페인은 올해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 광고제인 칸 라이언즈에서 은상 2개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