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2040년 220기가와트(GW), 현재의 6배 수준으로 확대하겠다는 도전적인 목표를 제시했다. 그러나 시장 확대가 곧 국내 관련 제조기업들의 성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 태양광 보급 과정에서 국내 기업들은 중국의 대규모 증설과 저가 공세를 이기지 못해 잇따라 사업을 철수했고, 내수 시장의 상당 부분은 중국산이 차지하게 됐다. 한국과 비슷한 경험을 거친 유럽은 풍력에서만큼은 같은 전철을 밟지 않겠다며 산업 공급망 보호를 강화하고 있다. 한국 역시 가격과 공급망을 아우르는 정교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다만 태양광 시장이 현재보다 5배 커지더라도 중국산 중심으로 재편된 현 공급망 구도를 고려하면 시장 확대의 수혜는 중국 업체에 집중될 공산이 크다.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국내 시장에서 국산 모듈 비중은 2019년 78.4%, 2023년 70.9%에서 지난해 30.7%로 급락했다. 반대로 중국산은 지난해 69.3%로 치솟았다. 특히 핵심 부품인 셀의 경우 중국산 비중이 96.1%에 달한다. 한국무역협회 통계를 보면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태양전지·모듈 수입액은 2억9431만 달러로, 연간 중국산 태양전지·모듈 수입액이 사상 최고치인 5억 달러를 넘어설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처음부터 국내 제조기반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태양광 공급망은 원재료인 폴리실리콘에서 잉곳·웨이퍼, 셀, 모듈로 이어지는 구조다. 2000년대 후반에는 OCI가 폴리실리콘, 웅진에너지 등이 잉곳·웨이퍼 생산을 확대했고 2010년을 전후해 삼성·LG 등 대기업까지 태양전지 시장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2011년부터 중국 업체들의 공격적인 증설과 글로벌 수요 둔화가 맞물리면서 국내 기업의 입지는 빠르게 좁아졌다. KCC가 생산을 중단하고 웅진폴리실리콘·한국실리콘 등 후발 업체들이 시장에서 밀려났다. 업황은 이후 한때 회복세를 보이기도 했지만 2018년 이후 중국발 공급과잉이 다시 심화하면서 남은 업체들도 버티지 못했다. OCI는 2018년 1587억원의 영업이익에서 이듬해 1807억원의 영업손실로 돌아선 뒤 2020년 국내 태양광용 폴리실리콘 생산을 중단했다. 한화케미칼도 같은 해 사업에서 철수했다. 넥솔론과 웅진에너지 등 잉곳·웨이퍼 업체도 파산 수순을 밟았다. 중국의 저가 공세에 밀려 공급망 앞단부터 국내 생산기반이 사라진 셈이다.
살아남은 업체들은 해외에서 활로를 찾았다. OCI홀딩스는 저렴한 전력을 이용할 수 있는 말레이시아 사라왁 공장으로 폴리실리콘 생산을 일원화했다. 한화큐셀은 2019년 미국 조지아주에서 모듈 생산을 시작한 뒤 잉곳·웨이퍼·셀·모듈을 아우르는 현지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다. 미국이 중국산에 무역장벽을 높이는 동시에 현지 생산에는 세제혜택을 주면서 한국 업체 투자를 끌어들인 결과다.
한국수출입은행은 지난 6월 태양광 산업 동향 보고서에서 “중국산 제품 가격 경쟁은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정부 지원 정책 없이는 국내 기업은 내수시장 확대의 수혜를 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이달 초 ‘한국판 IRA’로 불리는 국내생산세액공제 대상에 태양광과 풍력을 포함했지만 ‘국내 생산·판매’를 전제로한 세제 혜택으로는 무너진 생태계를 되살리기 쉽지 않다는 게 업계의 일관된 목소리다.
유럽외교협회(ECFR)는 지난해 7월 유럽에 설치되는 태양광 패널의 95%가 중국에서 수입된다며 풍력에서도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유럽연합(EU)은 넷제로산업법(NZIA)을 통해 재생에너지 경매에서 가격뿐 아니라 공급망 회복력과 지속가능성 등을 평가하도록 했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달 가이드라인에서 이를 “가격을 넘어 공급안보와 환경보호, 보다 강력한 공급망 등 폭넓은 사회적 편익을 입찰 평가에 반영하는 새로운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역시 풍력 분야에서는 국내 공급망을 지킬 기회가 남아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해상풍력은 터빈·타워·하부구조물·해저케이블·설치선·시공 등이 결합돼 조선·철강·전선 등 기존 제조 경쟁력을 활용할 여지가 크다. 국내에선 터빈 분야의 두산에너빌리티·유니슨, 타워 분야의 씨에스윈드, 해저케이블 분야의 LS전선·대한전선 등 공급망도 형성돼 있다. 업계 관계자는 30일 “중국은 이미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가격 경쟁력뿐 아니라 기술도 상당히 성숙돼 있다”며 “보급과 국내 제조업 보호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도 해상풍력 보급을 국내 산업과 연결하기 위한 제도 마련에 나서고 있다. 2035년까지 10년간 총 55GW, 연간 4GW 이상의 입찰 물량을 제시해 공급망 투자를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입찰 평가에서는 산업경제효과·공급망·안보 등 비가격지표를 강화하고, 국내 생산·기술이전·공급망 참여 계획의 이행 여부도 점검한다. 이를 통해 보급 확대와 공급망 육성을 병행하면서 경쟁을 통해 가격 경쟁력도 높인다는 전략이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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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6배 키운다”… 국내 재생에너지 공급망 보호 시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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